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윌리엄 애덤스 (문단 편집) ==== 잉글랜드 상관을 도와주다 ==== 잉글랜드의 배가 온 것을 계기로 이에야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을 요청하여 허락받자 클로브 호에 승선하여 영국에 가려고 했지만 새리스가 히라도에 거주하는 자신의 동업자인 야스에몬을 비난하는 태도와 수중에 가져갈 수 있는 돈이 별로 없는 것 때문에 잉글랜드로 가는 것을 거부했다. 그 대신 새리스가 동인도 회사의 일본 중개상에 대한 제의에는 수락하여 1613년 11월 24일에 2년을 기한으로 하는 [[영국 동인도 회사|동인도 회사]]의 직원이 되었다. 새리스가 돌아가자 애덤스는 새리스가 상관 운영을 맡긴 리처드 콕스(Richard Cocks, 1566 ~ 1624) 에게 현지 상인을 소개하거나 상관의 창고, 숙소를 지을 수 있도록 했으며, "일본 [[다이묘]]들의 환심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하는 등 히라도에 정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애덤스는 이들이 환락가를 찾는 등 방탕한 행동을 하자 이들의 잔치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콕스가 매일 잔치를 벌이는 방탕한 행위를 계속하면서 상관이 파산할 것으로 보이자 "교역에 집중하라"면서 충고했으며, 1614년 봄에 상관 사람들이 각자의 지역을 항해하는 것에 도움을 준다. 1615년 11월에 동인도회사의 계약이 끝났지만 소방목의 조달을 위해 시암을 항해하는 등 애덤스는 잉글랜드 상관을 계속 도와주어 1616년에는 재정 파탄을 모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11월에 애덤스는 시어드벤처호를 이끌어 시암을 항해하려고 출발했지만 뇌우로 배가 손상되자 류큐 제도로 향했지만 선원들끼리 서로 싸움을 벌이면서 오히려 류큐의 반감을 사 손해를 입었다. 잉글랜드 상관의 나가사키 대리인이 나가사키의 포르투갈 당국과 마찰을 일으키자 이들은 잉글랜드인을 돕는 반역 행위와 가톨릭 신앙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어 콕스가 나가사키 촌장에게 석방을 요구했지만 소용없었으며, 콕스는 애덤스를 통해 쇼군과 논의하라고 간청하자 이에야스에게 이를 설명하면서 석방할 수 있도록 하여 애덤스는 이에야스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잉글랜드 상관의 통역사인 존 고레자노에게 애덤스의 일본인 친구인 야스에몬이 욕을 먹자 야스에몬이 고레자노에게 "히라도를 떠나라"고 한 적이 있는데, 애덤스는 야스에몬을 변호하면서 콕스에게 "고레자노를 고용하면 잉글랜드의 평판에 해를 끼친다"고 했다. 네덜란드인들도 애덤스의 편을 들어주면서 콕스가 네덜란드인들보다 잉글랜드인들과 친하다고 배신을 느끼는 등 오해를 했지만 14개월 이후에는 고레자노에게 책임이 있음을 인정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